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는 유럽 여행지 가운데서도 가장 복잡한 감정을 남기는 도시 중 하나다. 카페와 골목은 낭만적인데, 건물 벽에는 여전히 전쟁의 흔적인 포탄 자국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도시는 단순히 ‘예쁜 여행지’라기보다 1990년대 보스니아 내전의 기억을 품고 있는 장소다. 그래서 사라예보를 여행하다 보면 관광객이라기보다 어느 순간 전쟁의 흔적을 목격하는 사람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번 글에서는 사라예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세 곳의 전쟁 관련 박관, Gallery 11/07/95, War Childhood Museum, Historical Museum of Bosnia and Herzegovina을 중심으로 도시가 간직한 기억과 여행자가 느끼게 되는 감정들을 정리해본다. 사라예보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 도시를 조금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장소들이다.

낭만과 잔흔 사이, 여행자가 목격자가 되는 도시
사라예보는 이상한 도시였다. 햇살은 따뜻하고, 골목은 낭만적인데 건물 벽에는 포탄 자국이 여전히 선명했다. 아름답다는 감탄이 올라오는 동시에 이 도시가 겪은 시간이 발목을 잡는다. 이곳에서는 여행자가 아니라 ‘목격자’가 되는 날을 여러 번 만났다. 그리고 생각했다. 사라예보는 예쁜 곳이라서가 아니라 기억해야 하는 방식이 독특한 도시라서 오래 남는 곳이라고.
사실 사라예보는 도시 자체가 전시관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모스크와 성당이 아슬아슬하게 공존하고 포탄 자국이 선명한 유럽풍의 건물까지 더해져 정말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가슴 아픈 흔적이지만 세월이 흘러도 선명한 저 포탄 자국들은 보수하지 않고 앞으로도 그대로 두었으면 좋겠다. 반전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최적의 산 유물이 될 테니까.
사라예보를 이해하는 방법, 전쟁의 박물관들
'보스니아 내전'은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이어진 전쟁으로, 유고슬라비아 해체 과정에서 민족, 종교, 영토 문제가 겹치며 폭발한 전쟁이다. 독립을 추진한 보스니아 정부와, 분리 혹은 세력 확장을 원한 세력이 충돌하면서 전국적으로 전투가 확산됐고 민간인 피해가 매우 컸다. 사라예보는 긴 포위 속에서 도시의 일상 자체가 전쟁이 되었고, 전쟁 말기의 스레브레니차 사건은 이 전쟁을 기억하게 만드는 가장 무거운 상징으로 남았다.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던 이 곳에서 '전쟁'이라는 키워드는 도시의 상징과도 같다. 그리하여 사라예보를 더욱깊게 이해하기 위해 방문했던 박물관들을 자세히 정리 해보았으니, 시간이 부족하다면 이 중 한 곳이라도 방문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보스니아 3대 전쟁 박물관 (필자 선정)]
1. Gallery 11/07/95
사진이 증언이 되는 공간, 그날의 현장을 직접 마주하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
2. War Childhood Museum
하나의 물건을 전쟁이라는 키워드로 번역해 주는 곳, 잔혹한 이미지 대신 아이들의 물건으로 전쟁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
3. 사라예보 역사 박물관
포위된 도시의 생활을 마주하는 곳, 사라예보의 전시를 일상으로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
■ Gallery 11/07/95

갤러리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 곳은 1995년 7월 11일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사진을 전시한 곳이다. 그 사건은 바로 ’92-’95 보스니아 내전 중, 세르비아 군인들이 보스니아의 무슬림들에게 행한 ‘스레브레니차’ 집단 학살 사건이다. 며칠간 무려 8,000명이 목숨을 잃어 2차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학살 사건이라고 한다.
사진 속에는 당시 남편과 아들들을 한번에 잃어버린 여자들의 망연자실한 모습들이 담겨 있었고, 특히 장례식 때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온 경찰들이, 바로 며칠전 장례식의 주인공들을 죽였던 당사자라는 터무니없는 아이러니도 있었다. 전쟁 전까지는 그냥 이웃 사촌일 뿐이었는데 갑자기 적이 되어 총구를 겨누게 되었다니, 도대체 무엇을, 누구를 위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던 걸까.
지구 상에서 똑같은 10분 동안 얼마나 대조적인 사건이 벌어졌는가를 보여주는 영상도 인상 깊었다. 1994년, 한국인으로 보이는 한 동양남자가 로마 여행을 하고 사진관에서 10분 만에 인화되는 사진을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사라예보에서는 한 소년이 엄마 심부름으로 빵과 물을 얻으러 밖으로 나가자마자 총격이 시작되었고, 집에 돌아 와보니 가족 모두 피를 흘리고 죽어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전쟁을 멈추기 위해 무슨 일을할 수 있을까.
갤러리 밖으로 나왔을 때, 사라예보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온했다.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고, 골목은 분주했고 아이스크림 가게에는 줄이 있었다. 그 일상과의 대비가 더 잔인했다.
* TIP
관람 시간: 빠르게 보면 40분, 천천히 보면 1~2시간. 천천히 보는 것을 추천한다.
같은 날 관련 전시 추가 금지: 감정 소모가 커서 다음 전시는 머리에 잘 안 들어온다. 실제로 그 다음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와 집단 학살 박물관’을 찾아갔는데, 관련하여 너무 많은 텍스트를 접해서인지 피곤하여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피가 난무한 사진과 고문 기구와 같은 전시물들이 너무 잔인하기도 했고.
■ War Childhood Museum

이 곳은 ’92-’95 보스니아 내전 당시 어린이 혹은 청소년이었던 사람들의 전쟁과 얽혀있는 물품들을 전시한 후, 그 스토리를 설명 해 놓은 곳이었다. ’92-’95라면 내가 5세-9세일 때이니, 정확히 나와 동시대의 어린 시절에 전쟁을 겪은 것이었다. 올 해 1월에 개관한 이 박물관은 2010년 한 웹사이트에 ‘당신의 어린 시절에 전쟁이란 무엇이었습니까?’ 라는 질문을 올려 3개월 간 참여자들의 다양한 답변을 바탕으로 책이 발간되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박물관을 구성한 것이라고 한다. 현재 50점의 물품과 이야기가 전시되어 있으나 이미 4,000여개의 물품이 모여 전시품은 계속 로테이션 될 예정이라고 한다.
우선 박물관의 아이디어와 컨셉이 마음에 들었으며, 작은 인형, 일기장, 옷으로 보이지만,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읽고 나니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슬며시 미소가 나오기도 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치 ‘안네의 일기’와 같이, 전쟁 당시 몇 개월 동안 숨어서 밖으로 나가지 못해 맛있는 음식도 그립고, 산책도 그립고, 친구들과 놀던 것도 그립다고 적어 놓은 일기장이었다. 어린 나이에 이유도 모른 채 얼마나 답답하고 두려웠을까. 수줍게 강아지 인형을 생일 선물을 건넸던 친구가 며칠 뒤에 죽고, 갑자기 집에서 포탄이 터져 눈 앞에서 형이 죽는 걸 지켜보는 이런 터무니 없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났던 현실은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내가 지구 다른 반대편에서 부모님의 사랑과 보호 아래 건강히 자라고 있을 때, 다른 한 편 내 또래의 아이들은 총 소리와 수류탄 냄새에 휩싸인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니.
한 인터뷰 영상에서, 당시 어린 시절 전쟁을 겪은 내 또래의 청년이 이야기했다. 자기 또래의 사람들은 모두 사소한 것에 감사하면서 산다고. 지금까지 나와 내 가족이 건강하게 살아있고, 편안하게 먹고 자고 쉴 수 있는 것이 이들에게는 기적과 같은 일이라는 걸 알기에. 다행히 이들처럼 전쟁을 겪지 않으며 평탄한 삶을 살아 온 내게,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현재 사랑하는 사람들과 몸 건강히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해야 한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가르쳐주었다.
* TIP
관람 방식: 텍스트가 많으므로 모두 다 읽겠다는 욕심 버리기. 내 마음을 붙잡는 이야기 몇개만 읽어도 감동은 충분하다
관람 후 동선: 올드타운/강변 산책으로 자연스럽게 일상 감각으로 돌아오기.
+ 그리고 이후 2024년에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전쟁을 겪은 어린이들의 이야기’라는 국제 교류 전시가 열렸다. 반가운 마음에 방문하여 전시를 관람했고, 7년 전 보스니아 여행의 추억과 함께 당시의 아릿한 마음이 살아났다.
■ 사라예보 역사 박물관

무려 3년 반 동안 지속되었던 사라예보 포위 때 사람들의 일상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박물관 내부는 마치 일부러 컨셉을 잡은 것처럼 황량한 풍경이었고, 나 말고 관람객도 단 한 명뿐이어서 조용한 가운데 꼼꼼히 감상할 수 있었다.
처음 세르비아군이 사라예보를 포위했을 때만 해도 시민들은 3년이 넘는 장기전이 될 줄 몰랐는데, 사태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점차 포기하고 나름의 생존 방식을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선명한 공간이었기에 빵을 배급 받으려고 줄 서 있다가 폭탄이 터져 22명의 사람들이 한번에 죽어버리기도 했었다. 당시 온 가족이 모여 숨어 생활하던 부엌을 재현한 공간이 있었는데, 얼마나 힘들고 절망적이었을지 눈물이 터져나왔다. 전시장 한 켠에는 ‘블랙룸’이 있어, 미성년자나 심신쇠약자가 관람하면 안 될만한 잔인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길 거리 난간에서 저격을 받고 마치 빨래 줄에 걸린 옷처럼 죽어있었던 사람의 모습은 머리 속에서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았다.
이렇게 암울한 시기에도 예술 공연 활동이 활발히 진행되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고, 한 영국 사진가가 찍은 종전 직후 1996년의 사라예보 도심과, 2011년 동일한 장소에서 찍은 사라예보 도심의 사진도 인상적이었다. 포탄을 맞아 쓰러질 듯 황폐한 1996년의 풍경과 그로부터 15년이 흘러 다시 활기를 되찾은 풍경. 반전의 메시지를 얻기 위해서는 ‘사라예보’에 방문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찾아서 가슴으로 느끼고 다시는 전쟁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랐다.
대학교 신입생 때 전공 과목 교수님께서 ‘세상에서 전쟁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지셨는데, 살면서 가끔씩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보곤 했었다. 그러나 전쟁을 없애는 건 사람들간의 갈등을 없애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으로 귀결되곤 했다. 100% 막을 수 없는 일이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전 전쟁의 참상을 통해 교훈을 얻고 스스로 깨닫기를 바라야 하지 않을까.
* TIP
추천 타이밍: 텍스트도 많고 심적인 부담이 크기때문에 사라예보 일정 후반에 넣는 걸 추천한다. 또한 그때쯤이면 도시의 풍경을 이미 알고 있기에 전시가 더 생생하게 다가올 수 있다.
감정 정리법: 오늘 나의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 보기
[2017년 당시 가격 & 환율 환산]
Gallery 11/07/95: BAM 15 (10,000원)
War Childhood museum: BAM 5 (3,500원)
사라예보 역사 박물관: BAM 5 (3,500원)
* 이 글은 2017~2018년 여행 당시의 체감에 기반합니다. 가격과 운영 정보는 변할 수 있지만, 도시의 본질은 오래 남는다고 믿어요 ^^
* 사라예보 박물관에 대한 또다른 글 -> https://brunch.co.kr/@museodeyuni/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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